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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노래는 왕실 행렬, 연회, 마상 시합 등 여흥이 있는 궁정 행사에서 연주되었으며 복잡한 다성부 음악만 아니라 각 지역의 전통 음악까지 포괄할 정도로 음악이 다채로워졌다. 노래의 주된 주제는 사랑이었고 특히 짝사랑이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했다.
궁정에서 필수 요소인 노래
<궁정 신하의 삶>은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군인이었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신하로 재직했던 경험을 되살려 쓴 책으로 궁정 문화에서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음을 알려준다.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는 궁에 있는 사람으로 자존심이 있다면 노래 부르는 것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류트로 반주를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고 주장했다. 그는 궁인이 부른 노래의 일 일부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흥미롭고 재미있는 대화 내용을 알려준다. 중세 트루바두르가 활동한 시대 이후에는 궁인이 서정시를 쓰고 음악을 붙였으며 주 소재는 사랑이었다. 궁인들은 사랑의 고뇌와 시련을 노래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노래는 궁정에서 특정한 행사 있을 때 쓰이기도 하고 왕족이나 귀족의 권력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곡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을 말할 수 있다. 부르고뉴 공작의 궁전에서는 의전 행사가 열리면 다성부 노래는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였다. 1454년에 부르고뉴 공작인 필리프 선왕은 꿩의 연회를 개최했다. 그때 음악가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 음악가 중 24명은 큰 파이 껍질 안에 몸을 숨긴 채로 노래하였다. 부르고뉴 공작이 이러한 행사를 연출한 이유는 이 행사 전해에 튀르크인이 오늘날의 이스탄불인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것에 대항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프랑스의 노래 ‘무장한 남자’는 십자군 원정을 선동하는 데 쓰였다. 그리고 이 ‘무장한 남자’ 노래를 바탕으로 황금 양모 기사단의 미사곡이 만들어졌다. 이 기사단은 필리프 선왕이 창설하였고 전 세계의 기독교인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을 한 기사들로 구성되었다.
지역별 샹송
부르고뉴와 프랑스의 작곡가로는 대표적으로 기욤 뒤파이, 질르 뱅슈아, 조스캥 드프레 등이 있다. 이들은 가곡으로 여러 성부가 교차하는 샹송을 작곡하였는데, 기욤 드마쇼는 최초로 시적 형식을 확립하여 사용하였다. 이 작곡가들의 샹송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여 많은 사람이 감상하였으며 각 지역의 여러 전통 노래와 융합되었다.
프로톨라는 이탈리아에서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 사이에 가장 일반적인 노래 형식이었다. 이 형식은 절마다 같은 선율을 반복하고 복잡하지 않은 연속된 시에 3, 4성부의 선율을 넣거나 비올 또는 류트 반주가 딸린 단성부 곡으로 만들어졌다. 프로톨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마르케토 카라와 바르톨 로메오 트롬본치노가 있다. 이들은 만토바 후작 부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궁정에서 활약했다. 최초로 인쇄된 음악 서적은 이들의 곡 집이나 작자 미상인 프로톨라 곡을 모은 곡 집이다. 프로톨라 곡 집이 인쇄된 덕분에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중요한 형식인 마드리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가장 주된 다성부 노래 형식이 테너 성부에 선율을 맡긴 테너리트였다. 이 형식에서는 테너 성부에 테너 성부보다 음역이 낮은 베이스 성부와 테너 성부보다 음역이 높은 2개의 성부가 추가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음악이 유럽 북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의 벨기에인 플랑드르 출신의 요하네스 오케헴은 1470년 스페인을 방문했다. 후안 데우레데는 스페인의 노래인 칸시온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하나로 이 작곡가 역시 플랑드르 출신이었다. 후안 델엔시나는 15세기 말에 스페인 알바 공작의 궁정에서 시인이자 작곡가, 극작가로 활동했다. 이 작곡가는 이탈리아의 프로톨라에 상응하는 것으로 시골풍 민요를 토대로 빌란시코라는 형식을 만들어 냈다.
궁정 음악과 서민 음악
15세기에 궁정 밖에서 3, 4성부의 다성부 노래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궁정 작곡가들은 시장이나 거리에서 들리는 서민의 노래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서민 노래를 수집하여 조금 더 정교하고 긴 다성 노래로 만들거나 곡만 분리하여 고상한 가사를 붙이는 일이 성행하였다. 이처럼 서민 음악은 궁정 음악과 결합하여 궁정 음악가들의 창의력을 자극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500년경에 목가적인 주제가 대유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궁정에서 활발히 상연되었던 노래극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궁인이 양치기 소녀나 소년으로 분장하는 내용이 많았다. 서정시는 절과 후렴으로 이뤄진 구조로 16세기에 들어서도 인기가 있었으나 표현적인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후렴 없이 다른 선율로 이어지는 통작곡법으로 된 독창곡이 대세가 되었다.
르네상스의 연주 방식
15세기에는 반주 악기의 성격과 행사에 따라 연주의 방식도 달랐다. 르네상스 시대 다성부 노래에 투입된 악기의 종류와 연주자의 숫자를 당시 제작된 음악 필사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의 미술 작품으로 이탈리아 화가 로렌초 코스타의 ‘콘서트’가 있는데 이 작품을 비롯한 미술이나 문학 작품 역시 당시의 연주 관행에 대해 몇몇 단서를 보여준다. 이러한 자료에 따르면 다성부 음악의 연주 방식이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외나 대규모 축하 행사의 경우 노래 반주에 관악대가 동원되거나 노래를 반주 없이 아카펠라 방식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류트 또는 하프 반주에 맞춰 독창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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